무해한예술실험
참여작가: 조민지, 노진아, 김의진, 정 강, 김지선
‘무해한 예술실험’ 그룹은 2023년 전주문화재단의 예술로GREEN전주-시각예술 워킹그룹 활동을 시작으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예술가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만든 프로젝트이다. ‘실험’은 실패와 성공 그 사이에 놓이게 되며,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시도와 태도를 갖출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번의 프로젝트를 전시의 형태로 실행했고, 작품보다 실험의 결과물과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접근해 나가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프로젝트에 따라 바뀌고 있고, 환경을 주제로 삼으며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부터 그렇지 않은 작가들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많은 이들이 환경과 예술 사이에서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많은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조민지 작가노트
<결실을 맺다(bear fruit)>는 자연의 열매를 상징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오만함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데서 얻어진 작품 속 열매는 단단하지 못하고 찌그러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은 결국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고, 이에 따른 부작용들은 곧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탐욕들을 조금씩 통제하려 노력한다면 자연은 스스로 회복이 될 것이고 자연은 우리에게 탐스러운 열매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의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 통제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연과의 공존은 우리에게 더 큰 결실을 가져다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노력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진아 작가노트
어린 시절, 미디어에서 백설탕보다 흑설탕이 건강에 더 좋다는 정보를 들었고 꽤 오랫동안 흑설탕만을 고집하며 섭취해 왔다. 그러나 후에 흑설탕은 캐러멜을 첨가하여 오히려 흰 설탕보다 당분이 높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이번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 작품인 <익숙해진 달콤함>은 파쇄된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녹여 각설탕의 형태를 재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플라스틱 병뚜껑을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물질로 설정했다. 과도한 인간의 욕망을 커다란 각설탕으로 표현함으로써 과한 달콤함만을 쫓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요즘, 일반 플라스틱의 대체품으로 생분해 플라스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생분해 플라스틱이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안심하고 사용한다. 그러나 생분해 플라스틱은 사실, 분해 가능 조건이 만족된 환경에서만 비로소 완전히 분해가 가능하며 그렇지 못한 조건 속에서는 일반 플라스틱과 다를 바가 없다.
당장의 달콤함과 편리함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세상과 그 이면의 것들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김의진 작가노트
인간에 의해 쓸모를 다한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 인간>은 쓸모를 다 하고 버려지는 것들을 의식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며 붓 자국 위에 또 다른 붓 자국이 겹쳐지는 중첩의 효과처럼 <종이 인간>작업에서도 쓰고 남은 한지, 오래된 한지, 입시생의 한지 등 여러 이유로 쓸모를 다한 한지가 한 겹 또 한 겹 겹쳐져 중첩되어 단단한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가벼운 종이 조각이라 한들 결코 인간에 의해 가볍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의식하는 시간과 노력만이 쓸모없는 것에 쓸모의 시간(recycle)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기에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 살아 숨을 쉬고 숨을 쉬지 않는 모든 것들의 존재를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정 강 작가노트
본 작품에서는 뮤지컬 의 넘버 ‘seasons of love’의 가사를 인용한다. 525,600분의 시간은 어떠한 가치로 해석되고 삶에서 환원되는가. 임의의 문장과 단어를 마주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떠올리는지 섣불리 알 수는 없다. 당시의 상황과 입장 역시 오직 당사자만이 느낄 뿐이다.
어쩌면 이번 행위는 누군가의 경험과 느낌을 빌려 쓰는 것이다.
일상의 한 단락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 뿌듯했거나 당혹스러웠거나 혹은 너무나 평범하여 굳이 의미를 부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그 사소함을 관찰한다.
밀가루풀을 섞어 점도를 높인 파쇄 종이를 가변한다. 쓸모를 다 한 자연의 파편을 다시 글자라는 사회적 기호로 굳이 붙잡아두려는 욕심을 받아들인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눈으로 보는 물질 너머의 가치를 함께 탐구하고자 한다.
김지선 작가노트
감정 해소의 서투름. 고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던 장애물이다. 그렇기에 인지된 잔여 감정들을 억지로 해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의 것처럼 컵 속에 지니고 끝내는 흘러넘치도록 남겨두는 방법을 택했다. 위 작품은 작가의 기존 작품인 속 흘러내리는 이미지들을 차용했다. 넘치는 것을 막거나 닦아내거나 하지 않고 흐르게 두는 것. 해소하는 방법이자 감정 표출의 방향으로 발언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흘러내리고, 번지고, 넘치고, 흐려지는 모습에 집중하며 작업하는 것을 중점에 두었다. 인위적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길을 쫓고 감각하도록 눈과 손으로 관찰하며, 멋대로 꾸물대며 종이 위에 남는 자국들을 긍정하는 태도로 방관한다.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고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자유로이 머물다 수분하나 없이 말라 자국으로 남기를 바란다. 더 이상 흘러넘치지 않도록. 바짝 말라 유유히 향기와 함께 떠나가도록.